해마다 봄 산방기간 끝나면
설악산 중청대피소에서 하루 묵으며 산행을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 땜에
대피소 숙박은 불가하고 산만 개방했다.
설악산을 오고 싶으면 무박으로 다녀가라는 얘기...
매년 다닌 한계령 - 공룡능선 코스는
이제 몇번 건너뛰어도 될듯하고
다른 무박 코스로 가보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서북능선 왼쪽편은
다시는 안온다던 다짐을 까먹고
4년만에 다시 찾는다.
이 서북능선 왼쪽코스가 참 애매한게...
일단 길 드럽고
어디 대피소에 들렀다가 갈 코스도 아니고
장수대에서 남교리로 넘어가자니
멀리 설악까지 찾아왔는데 너무 짧은 코스에
귀때기청봉쪽 서북능선길을 빼먹게 되고
한계령에서 남교리로 가면 10시간 정도인데
산행버스들은 보통 13-14시간 여유를 주니
서너시간이 남는 애매함.
그래도 한번 더 찾는다.
이번엔 대승령에서 대승폭포까지 내려왔다가 올라가고
십이선녀탕 계곡에서 길게 쉬다가
버스시간 맞춰가면 되겠지.
버너, 코펠은 냅두고
간단하게 챙긴다.
샌드위치 두개, 삶은 계란 두개, 볶음밥 조금...
배낭이 여유가 생겨서...
'그래, 성재처럼 쓰레빠 한짝을 넣자.'
십이선녀탕 다 내려와서 계곡에서 발씻고
쓰레빠 신고 버스타자고. ㅎ
30일밤 사당역에서 산행버스 탑승,
역시나 조금도 못자고
한계령에 내린다.
'아 진짜, 이놈의 무박산행...'
ㅡㅡ
산객들 많을줄 알았는데
한계령에서 기다리고 있는 산객은 한 30명 정도?
새벽 3시가 되니
국공 직원이 내려와서 문을 열어준다.
줄지어 입장.
눈에 뵈는게 없으니
경치 볼일도, 사진 찍을 일도 없다.
한계령삼거리 도착하니
4시 10분.
그런데 이정표 위치가 작년하고 다르네.
왼쪽 아래로 옮겨놨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귀때기청봉으로 향한다.
4년전 유턴한 첫번째 너덜, 왕바위 너덜쯤 오니
대청봉 왼쪽으로
붉은 기운이 뻗치기 시작한다.
공룡능선 범봉쯤 위로
떠오르는 해.
귀때기청봉
너덜지대. ㅡㅡ;;
또 너덜.
그래도 한계령에서 멀어질수록
너덜바위크기가 작아져
걷기가 좀 나아진다.
이제 아침 먹어야 겠네.
빵 한조각에 커피.
뒤돌아보면
귀때기청봉에서 쏟아져내린
너덜바위들이 보인다.
이 바위는
봉정암 다람쥐 바위와 흡사하네. ㅎ
해가 점점 올라가
이제 햇살이 따가워진다.
지나온 너덜바위만큼
내 무릎도 너덜너덜(하산길에 알게됨)...
이야...
하늘 좋으네. ㅎ
해는 공룡능선 위로
한참 올라갔고
하늘엔 멋진 구름 가득.
큰감투봉(1408m)
지나
원숭이 머리같은
바위 보이고
이제 너덜지대가 아니라
좁은 흙길이 한참 이어진다.
나무 사이라 바람도 안들어오고
볼것도 없고...
이 나무는 속은 텅텅 비었는데
살아있네.
산객들이 별로 안다니니
다니는 산양이 더 많은가 보다.
등산로에 산양똥.
좁은 흙길이 지루해지니
이제사 나타나는 대승령 푯말.
대승폭포 보러가세.
내려가는 돌길.
아이고, 반가워라.
처음보는 물길이다. ㅎ
땀도 좀 씻고 수건도 적신다.
여기 대승폭포까지 왔는데
기다려도 올라오는 산객이 없다.
증명사진 한장 찍어야 하는데...
전망대 난간에 카메라 올려놓고
타이머셀카 한장
이제 올라가려고 하니
올라오는 산객이 있다.
사진 한장 부탁해서 찍었는데...
내가 찍은 셀카가 낫다.
지워버림.
이제 하산길인데
오르막이다.
이제부터 시간 조절해야 해.
버스가 5시반 넘어 남교리에 온다하니
남교리에서 한참 기다리지 않으려면
4시반쯤 남교리 도착해서
칼국수에 쏘주 한잔 먹으면
시간 딱 맞을듯.
잠도 못잔데다가
이제 체력도 떨어질때가 됐으니
가다 쉬다를 반복,
천천히 올라간다.
다시 대승령,
왼쪽으로 남교리 가는 오르막,
완만한데 길다. 한참 올라간다.
왕짜증...ㅡㅡ;;
남교리 내려가는 돌계단길.
그래 맞아,
4년전 왔을때
여기 돌계단 내려가면서
무릎이 아파
다시는 안온다 했었다.
그게 왜 슬슬 무릎 아파오니
지금 생각나냐고...?
ㅡㅡ;;
산 어지간히 다녀도
무릎 아픈거 모르겠는데
여기 서북능선 너덜만 지나면
무릎이 아프네.
이제
계곡옆에서 쉬면서
시간 보낼곳을 찾아 보세.
예전 기억으로 복숭아탕 지나면
좋은곳이 여럿 있었다.
4년전 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못찍은
십이선녀탕 사진을
오늘은 팡팡 찍는다.
복숭아탕
쉴 자리 찾자.
찾자.
찾았다.
천불동의 비선대 비슷한 자리...
시원하게 씻고
노래 틀어놓고 바위에 눕는다.
이정도 쉬었으면
시간 맞겠다.
내려가세
남교리지킴터 옆 계곡에서
등산화 벗고 쓰레빠로 갈아신는다.
히히.. 시원하고 좋네.
그런데 다 내려오는 길에 카메라가 이상하다.
노출계가 엉망...
카메라고 무릎이고 여기 이 길만 오면
말썽일쎄. ㅡㅡ;;
산행버스가 서낭골칼국수 가게앞에 선다고 했으니
4년전처럼
칼국수 한그릇에 쏘주 한잔.
역시 서울로 가는 길은 꽉꽉 막힘.
9시 20분쯤 되어 사당도착.
이제 이 길은 진짜 안올테다.
아이고, 무릎팍이야.
ㅡㅡ;